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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평 이발소에서 가수 한복남과 께닫지 못한 영광

legending 2006. 9. 16. 00:03

 

 

87년 봄 어느날.

 

답십리 옆 장안동 연립주택촌에 거주할 때..

 

동네 목욕탕에 갔다. 2층에 있었는데 1층은 아마도 여자용이었을거고..

 

목욕탕 한켠에 있는 이발소에 들어갔다.

이발용 의자가 2~3개 정도에다 좁은 편이었고 초라하고 지저분했다.

30대 중후반의 약간 여윈듯한 남자가 이발사였다.

 

의자에 앉을려는데 이발사가 말을 했다.

"모르세요?"

나는 이발사가 손짓하는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바로 옆 의자에 50대 남자가 목 아레로는 이발용 가운에 갇힌채 고개를 내게로 돌렸다. 그리고 약간의 표정이 있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내가 인사를 했으면 반갑게 인사를 받고 무슨 말을 건네 줄듯한 느낌이었다.

" ... ? "

"가수 한복남 선생님이세요. .. 영광이에요.."

이발사는 재차 인사를 권하듯 설명을 했고.. 그가 그 이발소에 와서 영광인지 내가 그를 거기에서 만나게 되어서 영광인지 하여간 영광이라고 그 상황을 규정지어서 내게 말했다.

" ... "

나는 그 남자를 한번 바라보고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 앉았다.

이발사도 그 남자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다.

나의 무반응이 그들의 분위기를 침잠하게 했고 머쓱하고 민망하게 한 것 같기도 하다.

 

이발을 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 한동안 한복남.. 한복남을 생각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귀에 생생한 그때 그 이발사의 영광이에요 라는 말도 같이 생각했다.

틀림없이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그 후로 TV 가요무대 등에서 한복남이라는 연륜있는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저 사람이 그때 그 사람 맞나?.. 하고 자세히 보곤 하는데.. 맞다는 생각이 많이 들곤 했다. 사실은 그때 이발사에게서 들은 그 이름을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기도 하다.

 

2006년 8월 어느날..

애수에 젖고 차분하고 의미가 깊은 어떤 노래를 찾다가..

인터넷에서 한복남이라는 글자를 쳐봤다. 그런데..

우와..!!..

그렇게 막강한 가수인줄 난 몰랐었다. 그냥 옛날 가수중 한사람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던 내가.. 조금은 한심하게 생각됐다.

 

나 어릴때 시골에서.. 라디오도 없던 그 시절 동네 청년들, 어른들이 부르던 그 노래들 그 많은 노래들 대부분이 그 한복남의 노래였다니.. 어린 우리 또래들도 청년들에게서 주워듣고는 열심히 따라부르고 자라면서 한잔 마시고 몰려다니면서 고래고래 소리 질러 불러제꼈던 그 노래들.. 그 노래들이 그 사람이 불렀던 노래였다니..

 

영광이에요.. 그 이발사 말이 생생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 당시 한복남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해서 내가 영광이라고 생각했을지는 의문이다. 음악도 모르고 음악적 재능도 먹통이고 그것을 즐길줄도 모르고.. 자연히 그쪽 방향으로는 별 흥미도 없고..

영광은 영광을 누릴줄 아는 사람에게나 영광인 것이다. 나는 아니다.

 

그래도 그 사람과 짧게 스친 그 인연이 상당한 비중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만남에 있어서 영광이 전부는 아니며 다른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   

 

가수 한복남씨가 오래 오래 건강하게 노래했으면 좋겠고 TV에도 가끔씩 나와줬으면 좋겠다.

 

그때 그 이발사도 어디선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한복남씨가 두르고 있던 그 이발용 가운은 왜 그렇게 지저분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는지..

그 가운에 갇혀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시던 그 시선과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어릴때 동네 청년들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그 노래들을 배웠는지.. 지금와서 들어봐도 그때 그 곡조?(음정 박자 선율 창법 등)가 참으로 정확하던데..

 

                                                 ..............

 

그런데.. 91년도에 돌아가셨다는 기록이 있는데.. 진짜 돌아가셨을까?

믿기지 않는 것은 TV 녹화기록 방영 탓만일까?

우리들 가슴속에 기억속에 추억속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는 말이 이런거구나..

 

마음이 아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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