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인지 83년인지 한여름.
답십리 옆 장안동 장안시장 뒷길. 폭이 8m 정도 되는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교회건물, 맞은편에도 2~3층 정도의 상가건물이 있었다. 교회건물 1층에는 미용실, 이발소, 양복점 등의 가게가 있었고 2~3층에는 교회가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ㄷㅅ 교회라고 기억한다. 교회건물 아래쪽에 계단위 건물 코너1층에는 약국이 있었고 위쪽 건물들에는 석유집, 복덕방, 금은방 등이 있었다. 석유집, 복덕방, 금은방 맞은편에는 비교적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연립주택 두동?이 마주보고 서 있었고.
교회건물의 맞은편 건물 1층에는 주단집, 맥주와 통닭을 파는 통닭집, 그 바로 옆에는 과일가게가 있었다.
과일가게 옆에 본건물에서 달아낸 가건물에는 꽃집이 있었다.
나른한 오후 나는 과일가게 앞 간이 의자에 않아서 맞은편 건물과 길에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일가게는 북향이라서 여름을 나기에는 좋았다. 과일가게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구경도 하고..
골목 풍경은 한가롭고 평화로왔다.
이따금씩 통닭집 아저씨가 닭잡던 손을 걷어부친채 나와서는 건너편 이발소의 과부 면도사에 관한 관심을 표하기도 했고.. 건너편 이발소 아저씨는 하얀 가운을 입은채 세월아 네월아 걸어와서는 인생살이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충고하기도 했다.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양복집아저씨도 심심한듯 나와서는 재롱피우는 자기의 딸아이를 바라보다가 데려가곤 했다. 4~5세 정도 되는 아이였는데 신통하게도 아무 글이나 닥치는대로 다 읽어냈다. 나를 보고는 아자~씨~ 하면서 다가오던 모습이 생각난다. 교회건물의 보일러실을 돌보신다는 연세가 좀 드신 아저씨(할아버지?)도 사람좋은 얼굴을 하시고는 지나가시며 뭐라고 말씀을 거드시고. 꽃집 아저씨,아줌마는 잘 어울리지 않은것 같다. 무료해진 과일가게 아저씨가 어디론가 가면 과일가게 아주머니는 싫지않은 표정으로 아저씨 흉을 본다. 기원에 바둑두러 가는데 해가 져서야 온다고.
다음에..
오후 4시경이 되었을까? 오후에 외출하거나 출근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 보러 나오는 아주머니들도 있었고, 언제나 하얀 하이힐에 짧고 밝은색 계통의 옷에 화장을 한 30대 초중반의 자그마한 여자도 지나갔고,업소에 출연한다는 3류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20대 후반의 여자도 지나간다. 어깨에 둘러맨 그 큰 보따리같은 가방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의상가방이라고 한다. 페이를 타면 줄테니까 00 몇개 달라고 한다. 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워지고 출근하고 외출하는 사람들로 인해 골목길은 생동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주단집 사람(아주머니들)들은 얼굴도 거의 모르는 처지였다. 밖에 거의 나오지도 않고 가게 안에서만 손님이나 지인들을 접하는 것 같았다.
옆의 꽃집 주인 부부는 밖에 자주 나오고 들락거렸지만 필요한 얘기 외에는 별로 말이 없는 편이었다. 그 집에는 남자 아이가 둘 있었는데 큰아이는 다섯살 정도, 작은아이는 3살 정도 됐을거라고 기억한다.
큰아이는 런닝셔츠를 입기도 했지만 두 아이가 다 옷 하나 걸치지 않았다. 햇볕에 온몸을 새까맣게 그을렸고 흙이며 먼지 투성이였다. 배를 빵빵하게 내밀고는 가게안, 가게앞, 가게앞 골목 여기저기를 쫓아다녔다. 뙤약볕 아래에서 자기들 놀이와 장난에 열중했다.
다음에..
뜨거운 여름 오후에 골목길 그늘에서의 한가한 이야기와 나른한 상념으로 생활과 평화를 한꺼번에 만끽
하고 있었다.
꽃가게와 그 맞은편 약국아래 계단 사이의 골목길에는 맨홀이 있었다. 포장공사 등 덧칠이 있을 때마다 길 표면이 높아져서 맨홀 뚜껑은 길 표면에서 10 cm 이상 쑥 내려가 있었다. 차량들은 바퀴를 그 멘홀을 피해서 지나다녔고 미처 못피하면 심하게 덜컹거리는 낭패를 당해야 했다. 리어카나 오토바이, 자전거, 그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음에..
작은 트럭이 한대 와서 섰다. 그당시 유행하뎐 와이드 봉고가 아니었나 싶다. 작고 반듯하고 깨끗했다. 앞바퀴를 그 멘홀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차를 세우고는 깜빡이를 깜박이며 서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한가하고 나른하게 나는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한명씩 두사람이 타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었다. 일단 골목으로 진입하기는 했는데 이 길이 맞나 틀리나 목적지를 어떻게 찾아가나 중얼거리며 여기저기 살피며 생각하고 있는것 같았다.
꽃집 작은 아이가 예의 그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모습으로 아장아장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그 트럭으로 다가 갔다. 두 손으로 차에 붙듯 했다. 작은 손을 뻗어서 깜빡이등을 만져 본다. 손이 겨우 닿을 정도다.
나의 의식 저쪽에서는 꿈에서 깨듯 ' 어 저러다 큰일 나겠는데 ' 하는 생각이 있었다.(못됐지만 나는 그 위험을 잠시나마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차에 탄 사람들은 그 아이를 못본 것 같다. 여기저기 먼곳만 뚜릿뚜릿 살피고 있었는 것 같다. 아이를 보았을까? 가서 얘기를 해야 할까?
... ? " 스토옵 ㅂ~ ! "
나는 순간적으로 소리쳤다. 튀어 오르듯 일어나면서 오른손을 앞으로 번쩍 들면서.
아이는 이미 오른쪽 바퀴아래 깔려서 뒤로 넘어져 있었다. 여기 저기서 놀라는 소리가 귓등넘어로 들려 오는 듯 했다. 차를 마주보고 오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다음에..
쫓아가서 바퀴아래에 뒤로 넘어져 있는 아이의 양쪽 어께를 양손으로 잡고 아주 조심스럽게 사르르 당겨 보았다. 아무 느낌없이 아이는 당겨졌고 아이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아이의 발끝 부분이 시멘트 바닥위에서 바퀴에 치여 약간이라도 씹혔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스 하나 없이 포동포동 완벽히 멀쩡했다.
아이는 울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기나 했을까? 이내 놀란 사람들이 와 몰려 들었고 누군가 꽃집에 들어가 얘기를 했는 모양이다. 햇볕에 온몸이 검게 그을리고 얼굴이 갸름하고 마른, 전체적으로 가느다랗고 길게 생긴 꽃집 주인 남자가 런닝 차림으로 나왔다. 두 팔로 아이를 자기 얼굴과 마주 보게 한손으로는 아이의 엉덩이를 다른 한손으로는 아이의 뒷목 부분을 받쳐 가슴에 안고는 우리를 힐책하듯 뒤를 한두번 돌아 보며 꽃집으로 들어 갔다.
사람들은 흩어졌다.
트럭 운전기사가 내려서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나마 아저씨가 급출발을 하지 않아서 사고를 면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의 뛰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영문도 모른채 본능에 따라 브레이크로 발을 옮긴 것도 사고를 면하게 된 운명 중의 하나였다. 그 운전기사는 막걸리 한잔 사겠다고 했다.
트럭 운전기사는 차를 몰고 자기 볼일 보러 갔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ㄷ ㅅ 교회의 높은 뾰족탑을 올려다 보았다.
올려다 보는 내 행동에 가식이 섞여 있음을 느끼면서.
- 끝 -
후기
다음에...
그 이후 그 트럭 기사는 (물론) 본 적이 없다.
2020-06-04 글 다시 공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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