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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딸년들

legending 2006. 11. 30. 01:11

 

 2주전.

 

 아침에 조금 늦잠을 자고 외갓집에 갔다.

 차갑고 을씨년스런 날씨에 비까지 짜들어 내리는 와중에 마을옆 뒷산에 외할머니 장례를 치른 다음날이었다. 동네사람들, 문상객들, 상주들 모두 속수무책으로 차가운 비를 맞으며 마지막 가시는 외할머니를 위해 불평 한마디 없이 장례를 치뤘다.

 

 점심때쯤이었는데 커다란 음식상을 가운데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멀리 있거나 직장, 학교 다니는 친인척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고 외갓집 가족들과 어머니, 이모님들과 가까운 마을에 사는 손님 몇분(명)만 계셨다.

   외사촌 형님은 두건에 상복(몽상?) 차림에 많이 지쳐있는 모습이었고, 어머니 이모님들은 머리에 아직 터드레(?)를 쓰고 상복(몽상?)차림이었고 비교적 안정되고 활기 있는 모습이었다. 외숙모님과 외사촌 형수님 그리고 외사촌 여동생들은 광목(?)으로 된 상복(?)만을 일반 옷 위에 두르고 있었고 머리에 무엇을 쓰지는 않고 있었는데 주로 부엌쪽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방쪽을 보면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가끔 웃기도 하곤 했다. 다른 손님들도 광목(?)으로 된 상복을 겉옷위에 입고 있었다. 외삼촌은 사랑방에 계신지 안계셨다.

 쌀쌀한 날씨였으므로 따끈한 방바닥과 훈훈한 방 분위기가 가운데 놓인 커다란 음식상과 어울려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웃음 가득한 이야기들이 방안에 오가고 있었다.

 

  다음에..

 

" 이야기 꽃이 피어나네.. "

나는 약간은 비꼬는 마음으로 인사말을 대신해 말을 했다.

" 어. 얼러 온나. 여 00 왔네. 밥 먹어야 되제? 여 밥 좀 채리온나. "

작은 이모의 인사.

" 오셨어요? 어제 고생 마이 했제요.?. "

외사촌 형수님의 인사.

" 동네 사람들이 고생했죠뭐. 저야뭐 한거 있어요? "

나의 대답.

" 아이,, 데림 고생 마이 하싰어. 접수받고.. 산에서도 고생 마이 하싰쨔내요. 비도 짜드는데. "

형수님의 천성대로 호들갑스럽고 반가워하는 목소리의 공치사.

" 비는 뭐 내 혼자 맞았나요. "

나의 정떨어지는 대답.

" 그래도... "

형수님의 아쉬운듯한 말닫음.

형수님과 외사촌 여동생들은 다시 부엌으로 가고..

" 그런데 뭐그리 재미했는 얘기를 하시니락꼬.? "

나는 여전히 약간은 비아냥거리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 글쎄 너네 엄마가 말이다.. " 작은 이모가 말씀하셨다. " 아침에 제사?지내느락꼬 곡을 하다가.. 너어 엄마가 웃느락꼬.. 하도 웃기서 나도 웃음 참느라꼬.. 너어 외숙모도 그랬쩨.. 아이구 얼마나 웃기는지.. "

 큰이모님은 맏이답게 무덤덤하게 옅은 웃음만  얼굴에 띠시고 말씀이 별로 없으셨고. 어머니, 작은 이모님, 외숙모님(이하 '님'자 생략) 그리고 다른 몇몇의 손님들은 웃어가면서 재미있게 말씀들을 주고 받으셨다. 나이가 비교적 젊은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듣고만 있었고. 

 나는 궁금해서 이사람 저사람 이야기를 들으며 쳐다 보다가 어머니께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는 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얼굴 가득히 웃음보를 터뜨리며 웃음 반 말씀 반으로 말씀을 이어 나가셨다. 

 " ...아침에 사래미에서 ㅇ ㅇ가 왔는데.. 천연스럽게 잔 드리고 하는거 보이.. 얼매나 우습든동.." 어머니의 터진 웃음은 어머니의 얼굴을 10년은 더 젊게 하면서 이야기와 함께 계속되었다.

                                                                                                                2007.3.18. 오후2:52

                                                                                                                첨가수정  오후3:10

 

    다음에..

 

 " 예전에 그 사람이 자기 엄마 따라서 세배를 와서는.. 어른들 얘기하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집에 가자고 조르쟎나.. " 어머니의 참지 못하고 터져나오는 웃음과 함께 계속되는 이야기.

 " 몇살잇띤~데? " 옆에서 듣고 있던 어떤 손님의 질문.

 " 어린 아 띠지 뭐. " 어머니의 대답.

 " 그게 뭐 그리 우스워요? " 나의 질문.

 " 그때 생각을 하이 얼매나 우습노.. " 어머니는 웃음반 이야기 반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시고 손목등을 웃음 터지는 입가로 가져 가면서 이야기를 하셨다. " 자꾸 저어 엄마한테 가자고 헤약을 하면서 조르는데 ' 엄마 빨리 집에 가아~ 빨리 집에 가아~ ' 하쟌나.. '노자에서 놀다가 버드래미 와서 퍼드래진단 말이레~ 빨리 집에 가아~ ' 그면서 집에 가자고 칭얼거리면서 떼를 쓰던 사람이.. " 어머니는 더 이상 말씀을 못하시고 잠시 멈추셨다. 웃음때문에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셨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채었다.

 

" 그래던 사람이 어른이 돼서 두건을 쓰고 천연스럽게 잔을 드리고 절을 하는걸 보이.. 턱~하이 앉아서 말도 아주 어른같이  얼분스럽게 하고.. " 어머니의 웃음기 가득한 말씀.

" ㅇㅇ 지금 몇살이나 됐는데? " 방안에서 재미있게 듣고 있던 어떤 사람의 질문.

" 글쎄..?.. 환갑 안지냈나 ? " 듣고 있던 또다른 어떤 사람의 대답.

" 환갑이요?.. 아이구 나참 환갑이면 어른이지 '어른같이'는 뭔 '어른같이'래요? " 나의 말대답.

" 그랬던 아가 그래고 있쓰이.. " 어머니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못하시고..

 

 나 어렸을때 어른들이나 청년들이 하던 말놀이 중에 마을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서 서로 자기 마을을 좋게 얘기하고 남의 마을을 우습게 깔아뭉게는 말놀이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 하촌에서 하하 웃다가 노좌에서 놀다가 짤뜨매기에서 짤뚝거리고 무름재에서 무릎팍 아프고 버드래미와서 퍼드래진다 ' 라는 말이 있었다. 말 배우기 시작한 어렸던 우리 또래들도 그 말을 서로 재미있게 하고 또 서로 반복하곤 했었다.

 

                                                                                                 2007.3.19. 오후 10:08

 

        다음에..

 

" 너어 엄마는 우는것도 어색하쟎나..?.. " 작은 이모의 이야기.

" 어머니는 우는거 못해요.. " 나의 대답.

" 참다가 안되니까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서 ' 어허이구~ ' 그러면서 고개를 숙이쟌내..? .. 웃음이 터지니까 되나? 문열고 나왔뿌랬제.. 그래이 너어 외숙모가 또 따라 나왔뿌제.. 너어 엄마 또 따라 나왔뿌고.. "

 어머니 못지않은 웃음기를 가지고 계신 작은 이모의 우스워 죽겠다는 듯한 말씀. 배꼽을 잡고는 아예 굴르다시피 하셨다.

" 그럼 상주는 위아제 혼자 제사 지냈어요? " 나의 질문.

" 아니, 큰 이모가 계싰쟎아.. 00이도 있었고 ㅇㅇ도 있었고.." 작은 이모의 말씀. 그나마 완전히 망치지는 않았다는, 변명인지.. 안도감이 도는 듯한 느낌의 말씀이었다.

" 그 얘기 때문에 그렇게 됐어요? " 어머니에게 한 나의 질문.

" 아니, 그때는 억지로 웃음을 참았는데.. " 어머니의 대답.

" 아이고.. 너어 엄마가 또 킥킥하시쟈나.. " 작은 이모의 말씀.

" 왜요?.. " 나의 질문.

" 오라배가 절을 하는데 뒤에서 보이 꼭 꽁지 빠진 닭 같쟈나.. " 어머니의 또다시 웃음 터지는 목소리의 대답.

 

                                                                                                            2007.3.20 오후 6:46

 

" 속옷도 안입고 상복만 겉에 입고 절을 하는데 뒤가 뻐꿈 보이니까... 꼭 꽁지 빠진 닭같은게..^^^^^ " 어머니는 여전히 웃음을 못참으시고 빼꼽이 빠져라 웃으시며 이야기를 하셨다.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우스워 죽겠다는 듯 재미있어 하며 웃어제쳤다.

 그때 외삼촌께서 엉거주춤 조용히 들어오셨다. 어머니께서 자리를 비켜주시고 외삼촌은 문앞쪽 벽에 기대 앉으셨다. 외갓집에 올때마다 식사때는 외삼촌은 항상 그자리에 앉으신다. 담배 피우는 도구라든가 TV리무콘 등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외삼촌은 제사를 지내고 남자 손님들이 모두 가고 난후 피곤한 몸으로 사랑방에 혼자 잠시 누워 계시다가 안방에서 워낙 떠드니까 심심하고 해서 나와 보신것 같다.

 나를 위한 밥과 국 등 더운 음식 몇개와 반찬이 추가되어 나왔다. 나는 의례적으로 방안에 계신 외삼촌 등 손님들께 식사 하셨냐고 운을 뗀뒤 얼러 먹으라는 모두의 권유?를 받으며 밥을 먹었다.

 누군가 외삼촌께 옷을 왜 그렇게 입었었느냐고 물었다.

외삼촌은 " 손님이 갑자기 오이 서두르다 보이 그래됐다. "고 하셨다.

 

 상복 안에 옷을 제대로 갇춰입고 옷고름 등을 반듯하게 잘 매야 하는데, 이웃 마을 사는 손님들이 생각보다 일찍 오시고 차려야 할 음식이 막 들어오고 하니까 서두르다가 속옷이랑 겉에 입는 상복을  제대로 갇춰 입지 못하셨다는 말씀이었다. 더구나 남자 상복은 뒤가 터지지도 않았는데도 어떻게 하다가 말려 올라 갔었는지 했는 모양이었다. 물어보지를 않아서 모르겠지만 상복 안쪽에 집에서 입으시는 양복이나 아니면 무슨 속옷 비슷한 것을 입고 계시지 않으셨나 싶다.

 외삼촌, 이모부, 외사촌 형님 등의 상복과 두건 그리고 발목위 종아리에 매는 각반 비슷한 것(행전?)과 허리띠 비슷한 것 등은 다른 사람들 것과 비교해서 좀 별나고 복잡하긴 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상주가 되었으니 부모에게 죄인이라서 험하게 보이라고 그렇게 차림을 한다고 하셨다. 여자 상주?들이 머리에 또아리 같이 생긴 것(터드레?)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2007.3.22 오후 2:50

   다음에...

 

 어머니는 제사를 지내며 곡을 하시다가 이웃마을 사는 외갓집 집안 손님이 잔 드리고 절하고 이야기 하고하는 것을 보고는 옛날 생각이 나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어색한 곡을 하고 계셨는데, 이번에는 외삼촌이 잔 드리고 절을 할 때, 그 모습이 또 우스워서 결국에는 웃음을 감당을 못하셨고, 작은 이모는 그것이 또 우스워서  제사 도중에 도망나와 버리셨고, 이어서 외숙모 그 다음에는 어머니까지 따라 나오고 말았다는 이야기인데 안방에 나오셔서는 이번에는 또 서로 니탓 내탓 하시다가 또 웃음을 떠뜨리시고.. 

 

                                                                                                 2007.3.22 오후 5:08

 

   다음에..

 

 큰이모는 조용하게 듣고 계시다가 예전에 본인이 열여섯에 풍양 조씨 층층시하 집안으로 시집을 가셔서 처음 그쪽 집 조상에게 잔드리고 절을 하던 때를 회상하셨다. 구름같이 많은 집안 어른들이 빙 둘러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잔을 올리는데 고개도 못들고 자신이 올린 술잔을 집사가 받아서 젯상에 내려 놓는 ' 딸깍 ' 하는 소리만 듣고 절을 하고 몸을 움직여야 했던 그때를 바로 어제일 처럼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제사를 지낼때마다 아이들이 한놈이 ' 킥' 하고 웃으면 또 딴눔이 ' 킥킥'하고 따라웃곤 했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이들이 여럿인 집은 어느 집안이나 다 마찬가지였나 보다.

 

 이야기는 어느새 본인들의 어릴때 추억담으로 돌아가서 높은 다락에 있는 꿀 훔쳐 먹던 이야기.. 외삼촌이 어머니보고 엎드리라고 시킨 후 어머니의 등을 밟고 올라가서 다락에 있던 꿀단지를 꺼내 내렸던 이야기.. 꿀단지가 상당히 컸었다는 이야기.. 니 한숫가락 내 한숫가락 계속 퍼먹었다는 이야기.. 나중에는 외삼촌이 꿀을 어머니 머리카락에 번들번들하도록 쳐발랐다는 이야기..

 외삼촌이 휘두르던 괭이에 뒤에 있던 어머니가 맞아서 머리가 깨졌던 이야기.. 그 다음에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 마을 앞에 개울이 꽤 컸었는데 거기에서 외삼촌이 물을 막고 퍼내고 어머니가 주워담고..  물고기 잡던 이야기.. 그러다가 무엇을 잃어 버렸다는 이야기..

 

 외삼촌은 조용하게 말씀하셨지만 어릴때가 즐거웠었다는 듯 상심에서 벗어나 웃음을 지으셨다. 외삼촌과 어머니가 이야기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맞장구도 치면서 정정도 해가면서 웃음을 터뜨리고는 하셨다. 큰이모는 일찌감치 시집을 가셔서 공통된 추억이 조금 덜 한데다가 점잖으셔서 말씀이 별로 없으셨고 작은 이모는 그때는 아직 너무 어려서 같이 어울리지는 못하셨는지 듣고만 계시다가 웃으시고는 하셨다. 큰이모와 작은 이모도 본인들의 어릴때의 추억들을 이야기 하며 웃고 즐거워 하셨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다른 음식이 또 차려졌고.. 이야기와 웃음은 계속 이어졌다.

 

 이것이 백수를 넉달 남겨 놓고 쌀쌀한 늦가을날에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의 딸년들의 모습이다.

 

 맏딸이 칠십구세, 둘째가 칠십삼세, 막내딸이 육십구세 이셨다.

 외삼촌은 칠십육세, 외숙모는 외삼촌보다 한살 많은 칠십칠세 이셨고.

 

 해가 바뀌어서 올해는 큰이모는 팔순, 작은 이모는 칠순.. 잔치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그날 나는 점심 제사에 참석했었고.. 그 다음날 외갓집 식구와 그 집안 손님들을 따라 옆뒷산에 모셔진 외할머니 산소에 다녀왔다.  약식으로 졸곡까지 끝냈다고 한다.

 

 2주 전쯤 어머니는 외할머니 생신에 가봐야 한다면서 외갓집이 있는 시골로 내려 가셨다. 

 생신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셨다.

 

 

                                                   

                                                         --- 끝 ---  

 

 

 

묻는다면.. 우리 시골집도 물론 거기에 있다.        

                              

                                                                                               

                                                                                                   2007. 3. 22 오후8:20

                                                                                                   

                                                                                                   나중에 일부 수정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