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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에서 앙드레 김과 친구와 나

legending 2006. 9. 9. 01:25

 

2003년 6월 5일.

저녁 8시경.

친구의 차로 그 친구와 치악산 아래 어느 주차장에 도착.

깜깜했고 매점에도 어디에도 사람은 없고 커다란 (관광?)버스들 예닐곱대와 레저용 차,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음.

주차장 구석에 차를 세우고 차옆 주차장 바닥에서 라면인지 무슨 요리를 해먹고.. 소주도 한잔.

좀 추웠는데 차에서 어떻게 끼여 자고..

 

6월 6일.

새벽 어두컴컴할 때 일어나서 친구따라 주차장에서 언덕을 내려와서 개울옆 오솔길 따라 걷기 시작.

 

어제 소주를 먹어서 그런지 피곤한것 같다.. - 나

그런줄 몰랐는데.. - 친구

 

어디를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걷다가

친구가 토끼바위라고 말하는 곳에서 먼산 배경으로 사진 한번 찍고..

 

돌탑 있는 봉우리에 도착. 옆에 서서 또 사진 한번 찍고..

여학생들이 카메라 내밀며 셔터 좀 눌러 달라고 해서 먼산 배경 등 두세번 그렇게 해주고..

 

사람들은 계속 올라오고.. 또 내려가고..

 

깍아지른 듯한 계단따라 내려가기 시작.

모두 올라오는 사람 뿐.. 내려가는 사람은 친구와 나 둘 뿐인 듯..

 

여섯살 정도 된 남자 아이가 엄마인 듯한 사람과 실랑이. 계단에서.

 

멀리도 왔네.. 올라가는 길이라? 내려가는 길이라? - 나의 질문

올라가는 길이예요.. - 아이 엄마

왜 그래? - 나

여기까지 와서 힘들어서 못가겠다고.. 내려가자고 저러쟎아요.. - 아이 엄마

여기까지 온 것도 많이 온거다. 이왕 온 거 꼭대기까지 가봐라. 세상이 다  보인다.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  - 나

 

그런데 아이들 눈에도 멀리가 다 보일까?

 

산 아레로 다 내려와서 계곡따라 평지길을 걷는데 무슨 왕왕거리는 소리.

목탁소리인지 염불소리인지.. 남자 염불소리 같은데..

 

여기 절 있나? - 나

매점에서 틀어놨을거야. 장사하느라고.. - 친구

뭔 절이로?

구룡사.

 

친구는 직선으로 내려 갈려고 하고 나는 소리나는 쪽으로 가보자고 하고..

소리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도 친구는 절이고 뭐고 관심도 없다는 듯 직선길 따라 계속 내려가고..

 

너 그냥 가라 내 저기 금방 갔다 오께. - 나

...

 

막 뛰어서 몇발짝 가니까 절 모습이 금방 나타난다.

급하게 살펴 보다가 금방 돌아서 왔다. 친구 따라 가려고.

 

봤나? - 친구

에이 저거 틀렸어.. - 나

...

너무 세속적이래. 천박하고.. 욕심이 더덕더덕 나는거 같고.. 건물을 왜 그렇게 크게 짓는지 몰라. 산하고 어울리지도 않고.. 경건한 맛도 하나도 없어. 장사할라고 지논거 같애..

...

 

절에 다니는 친구라서 그런지..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친구는 별 말이 없다.

그냥 터덕 터덕 걸어내려 갔다.

 

...

 

저 아래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뭉쳐서 올라온다.

가까와져서 보니.. 앙드레 김..

 

제자인듯한 젊은 사람들 여러명의 호위를 받으며 횡대로 서서 올라오고 있었다.

예의 그 하얗고 풍성한 이상한 옷을 입고.. 까만머리를 하고..

젊은 사람들은 티나지 않는 티샤쓰 등 자유로운 복장들이었다.

 

넓은 길이어서 사람들 통행에 불편은 없었다. 통행하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았고..

사람들은 흘긋 흘긋 보면서 그냥 지나갔다.

 

앙드레 김이잖아 ? .. - 나

맞아.. - 친구

 

안녕하세요 ~ ? - 나

 

바로 옆을 지나칠 때 반가운 마음에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못들은 듯 그냥 가는 것 같다.

 

서운한 마음이 들려는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몇몇 그의 일행도 같이 돌아본다.

 

아 , 안녕하세요 ? - 앙드레 김

 

나를 발견하고는 한쪽손을 올리며 인사를 받았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말이 느리고 또박또박하고 명확해서 상당히 성의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들 일행은 그들 갈길을 갔고, 우리는 우리 갈길을 갔다. 

 

2006년 8월 18일.

친구가 왔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치악산 얘기가 나오고 구룡사 얘기가 나왔다.

 

그때 치악산에서 앙드레 김도 만났쟎아 ? .. - 친구

맞아 그때 한마디 말좀 해보는 건데 잘못했어. - 나

무슨 말을 ? - 친구

양복은 양복 한벌가지고 근무복, 평상복, 예복.. 상가집 예복, 결혼식 예복.. 다 하쟎아 ?  한국옷도 그런거 하나 만들어 달라고.. 개량한복 그런거 말고.. 개량한복 그거, 순 사기꾼같고 사이비 종교 교주같고.. 그게 한복이라?  ..이상하고 펄렁한 옷만 만들지 말고 그런거 하나 만들어 달라고.. - 나

그 사람은 외국가서 공부한 사람이야.. 서양에서 서양공부했어.. 한복하고는 상관없어.. - 친구

...  - 나 

 

친구 말이 맞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보다는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그 사람이 만드는 옷은 한복티가 많이 나는건데..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걸로 아는데.. 동양.. 한국 옷의 우아함.. 그런 매력을 많이 표출하는 걸로 아는데..

 

진짜 그런 옷 하나 못 만드는지 꼭 얘기하고 싶다.

 

오늘..

 

어린 시절, 시골 겨울 아침에.. 온 천지가 흰눈에 뒤덮였을 때..

아이들을 찾아온 눈사람 같은..

 

아무리 생각해도 눈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며..

 

 

                                                           - 끝 -